"필름 카메라의 낡고 자글한 색감은 당장 오늘의 것도 10년 전 추억으로 왜곡시켜 버리는데, 난 그걸 '낭만 조작'이라고 부른다."

창간호 첫 에세이의 주인공은 5ft.mag의 기획·글을 맡은 김현아다. 그는 평범한 매일을 낭만적으로 바꿔주는 도구로 필름 카메라를 호명한다. 그리고 그 카메라가 어떻게 자신의 가족 이야기와 맞닿게 되는지를, 자글한 색감처럼 느린 호흡으로 풀어낸다. 우리는 그 일부를 미리 공개한다.

지금부터 어느 단편의 장면들을 떠올려보자

있음을 알리는 촌스러운 간판, 때가 되어 떨어진 보도블록 위 나뭇잎, 할 도리를 위해 얼기설기 이어진 전깃줄. 매일 마주하지만 마주한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당연한 것들은 보통의 나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특별할 거 없는 매일의 장면을 낭만적으로 만드는 아이템이 있다. 바로 필름 카메라다.

방금 떠올렸던 장면에 필름 필터를 얹어보자. 마법같이 만들어지는 특유의 감성에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필름 카메라의 낡고 자글한 색감은 당장 오늘의 것도 10년 전 추억으로 왜곡시켜 버리는데, 난 그걸 '낭만 조작'이라고 부른다.

낭만이 없어 낭만을 좇는 시대

요즘 시대는 낭만인 줄도 모르고 지냈던 옛 아날로그 감성을 따라 한다. 필름카메라는 물론, 힙하다고 소문난 핫플레이스에 가면 뒤통수 긴 티비와 옛날 컴퓨터가 오브제로 설치되어 있고, 턴테이블에 돌아가는 LP는 멋이 되어 한동안 큰 유행을 끌었다.

내가 중학생 때만 해도 필름 카메라는 특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휴대폰에 달린 오백만 화소 카메라가 자랑거리인 시대였다. 대한민국의 기술 발전은 말도 안 되게 빨랐다. 그 작은 카메라는 1년 뒤 이천만 화소가 되었고, 10년 뒤엔 오천만 화소, 그리고 지금은 이억만 화소를 자랑하며 웬만한 전문 카메라를 따라잡았다.

선명해진 화질만큼 세상도 뚜렷해졌다. 과열화된 경쟁사회와 자본주의로 누릴 것은 풍부해졌으나 낭만은 사라졌다. 현실을 좇다 각박해진 사람들은 여유를 잃었고, 낭만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상을 매력적으로 담아주는 도구

낭만은 필요하지만 일상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낭만을 조작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으면 좋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BGM만 가득 찬 순간을 만드는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이라든가, 일상을 매력적으로 담아 줄 필름 카메라 같은 거.

손가락 하나로 쉽게 찍고 지우는 고화질의 스마트폰과 다르게, 한 번 찍으면 돌이킬 수 없는 필름 카메라는 피사체에 대한 고찰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36장의 필름 한 롤을 허투루 채우지 않으려 의미를 담는 탐구적 행위부터 얼마나 낭만적인가.

매일 타는 출근길 지하철 한 컷, 점심시간마다 들리는 카페의 커피 한 컷, 퇴근 후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웃는 모습 한 컷. 그렇게 꽉 채운 필름을 인화해보면, 특유의 물 빠진 색감과 꽉 눌러진 차분한 감성 덕에 평범한 내 일상이 낭만적인 추억으로 미화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엄마가 물려준 카메라

필름 카메라는 나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전문가용도 아니고 색감이 그렇게 예쁘지도 않다. 심지어 둔탁한 디자인에 무게도 나가는 편인데, 난 이 카메라가 그렇게 좋다.

한창 유행할 시기, 나도 하나 살까 고민할 때 엄마가 물려주었던 카메라였다. '그 당시 얼마나 비싸게 주고 샀는데.'라는 엄마의 말에는, 자신의 새끼들을 잘나게 담아주고 싶어 했던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에필로그

우리 가족의 낭만을 담당해 준 그 카메라, 그리고 며칠 전 부모님께 건 한 통의 전화에 대하여.

우리 가족의 낭만을 담당해 준 이 필름 카메라는 1990년도 삼성에서 판매한 '핸디맨 하프 카메라'로, 세로로 찍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처음 받았을 때 배터리 방전은 물론 렌즈도 엉망이라 고물 같은 상태였지만,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비싸고 멋진 카메라보다 엄마아빠의 손때가 탄 물건이라는 게 더 낭만 있게 느껴졌다...

🔒 매거진에서 결말 읽기

유모차에 타서 나들이를 가고, 울면서 벌을 받는 어린 현아를 찍었던 엄마아빠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다. 어린 자식들과 청춘을 보냈던 두 부부의 사진은 몇 장 남아있지 않았고, 카메라는 나에게 넘어왔다.

자식을 다 키우고 별일 없는 나날을 보내는 두 부부에게 잃어버린 낭만을 만들어줄 기회가 온 것이다. 그렇게 며칠 전, 전화를 걸었다.

매거진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

이 에세이의 마지막 장면은 직접 종이를 펼쳐 만나보시길 권한다. 김현아 작가가 부모님께 건넨 한 마디, 그리고 그가 떠올리는 어느 단편의 장면들. 낡고 자글한 필름 감성을 얹은 마지막 문단은 매거진에만 실려 있다.

김현아
5ft.mag의 기획과 글을 맡고 있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필름 한 컷처럼 정성껏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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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전문은 매거진에서

김현아의 에세이 〈낭만 조작 아이템〉 전문과 또 다른 에세이 〈별일없음에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5ft.mag Vol.01 창간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