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든 신 노구치의 사진집을 들고 다니는 것 같은 카드를 만들고 싶다."

미국의 트럼프 회사 Fulton's Playing Cards 가 신 노구치에게 건넨 생각이다. 그렇게 만든 트럼프가 9월 16일에 나왔다. 카드마다 그의 사진이 한 장씩 들어갔다.

Fulton's 는 디자인 트럼프를 만드는 회사다. 미키 마우스와 NASA, 영화 《텍사스 전기톱 학살》, 시리얼 Monster Cereals 와 손잡고 카드를 내 왔다. 이번에는 사진가 한 사람의 사진으로 트럼프 전체를 채웠다.

신 노구치는 5ft.mag 독자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도쿄에서 태어나 가마쿠라와 도쿄의 거리를 20년 가까이 찍어 온 스트리트 사진가다. 거리에서 마주친 우연을 컬러로 담고, 피사체와 눈을 맞춘 채 셔터를 누른다. Vol.02 에 그의 인터뷰를 실었다.

신 노구치 인터뷰 기사의 대표 사진 함께 읽기 Shin Noguchi 인터뷰, 거리에서 발견한 일상의 특별함 가마쿠라와 도쿄의 거리를 20년 가까이 찍어 온 신 노구치가 말하는 사진의 시선. Vol.02 인터뷰의 앞부분이다.

사진을 거의 자르지 않았다

작가가 먼저 꼽은 것은 크롭이다. 카드마다 사진을 거의 자르지 않고 넣었다. 그래서 그는 이 트럼프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작은 사진집" 이라고 부른다.

검은 바탕 위에 세워 놓은 에이스 카드 넉 장. 스페이드 에이스에는 해변에서 소리치는 아이가, 하트 에이스에는 비행기 창가의 주스 잔이 들어가 있다
에이스 넉 장. 뒤로 라이카와 포트라 400 필름 통이 보인다.

실물 사진을 보면 방식이 보인다. 가로로 찍은 사진은 카드를 눕혀야 바로 보이게 넣었고, 세로 사진은 세운 채 넣었다. 모서리의 숫자와 무늬는 흰 테두리 안쪽에 작게 들어가 사진을 가리지 않는다. 트럼프는 세로로 긴 판형이다. 판형에 맞춰 사진을 잘라 내는 대신 카드의 방향을 사진에 맞췄다.

스페이드 J 카드에 시바견과 얼굴을 맞댄 남자의 사진이, 그 아래 스페이드 Q 카드에 오니 탈을 쓴 아이가 카드를 펼친 사진이 들어가 있다
시바견과 얼굴을 맞댄 사람은 스페이드 J, 그 아래 오니 탈을 쓴 아이는 스페이드 Q 다.

노는 법은 정해 두지 않았다. 사진만 넘겨 봐도 되고, 보통 트럼프처럼 써도 된다. 작가는 사진에 나오는 피사체나 장면끼리 짝을 맞추는 식으로 자기만의 게임을 만들어 봐도 좋다고 적었다.

흰 분장에 붉은 입을 그린 얼굴이 들어간 조커 카드. 아래 놓인 카드 테두리에는 KODAK PORTRA 400 글씨와 컷 번호가 찍혀 있다
조커 카드. 아래 카드 테두리에 엣지 넘버 KODAK PORTRA 400 과 26, 27 이 찍혀 있다.

필름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에서 눈이 멈출 것이다. 아래쪽 카드의 테두리에 엣지 넘버(edge number)를 그대로 옮겼다. 퍼포레이션 바깥 가장자리에 찍혀 현상하면 드러나는 필름 이름과 컷 번호다. 상품 사진마다 라이카와 포트라 400 필름 통을 옆에 둔 것도 같은 이야기다.

카드에 들어간 사진들

카드에는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장면이 여럿 들어 있다.

절 앞마당에 세워진 기린 모형 옆으로 머리가 벗어진 노인이 지나간다. 뒤로 도쿄타워가 보인다
기린 모형 옆으로 노인이 지나간다. 뒤로 도쿄타워가 보인다. ⓒ Shin Noguchi
은색 승합차 안에 가부키 분장을 한 아이들이 앉아 열린 창으로 바깥을 본다
가부키 분장을 한 아이들이 차창 너머로 이쪽을 본다. ⓒ Shin Noguchi
눈이 쌓인 거리에 붉은 우산을 쓴 사람이 서 있다. 오른쪽 절반은 눈송이가 붙은 붉은 기둥이 가린다
눈 내린 거리의 붉은 우산. 오른쪽은 눈송이가 붙은 기둥이다. ⓒ Shin Noguchi
젖은 바닥의 노란 점자 블록 위로 흰 하이힐을 신은 다리가 지나간다
노란 점자 블록 위의 흰 하이힐. ⓒ Shin Noguchi
멀리 눈 덮인 후지산이 보이고, 그 앞 전망대 난간 뒤에 후지산 사진이 들어간 광고판이 서 있다
진짜 후지산 앞에 광고판 속 후지산이 섰다. Vol.02 인터뷰 기사에도 실었던 사진이다. ⓒ Shin Noguchi

거리 사진을 트럼프로 만들면 무엇이 달라질까? 사진집은 앞에서부터 차례로 넘긴다. 카드는 섞이고, 손에서 손으로 건너간다. 한 판이 끝날 때마다 사진의 순서가 바뀌고, 작가가 정해 둔 차례 없이 사진을 만나게 된다.

디자인 세 가지, 가격도 세 가지

검은 바탕 위에 선 트럼프 상자. 위쪽에 눈 덮인 후지산 사진이, 아래쪽에 초록 글씨로 Shin Noguchi 가 적혀 있다
일반판 후지산 상자. 초록 글씨로 이름을 얹었다.
오니 탈을 쓰고 노란 옷을 입은 아이가 카드를 쥔 사진이 앞면에 들어간 트럼프 상자
한정판 오니 상자. 오니 탈을 쓴 아이가 카드를 쥐고 있다.
박 오니 상자의 여러 색을 모은 사진 아홉 장. 카드 옆면이 보라, 은색 무지개, 분홍, 금색 무늬, 초록, 검정, 빨강 박으로 반짝인다
박 오니 상자. 보라, 분홍, 초록, 빨강, 금색 무늬까지 카드 옆면의 박 색이 저마다 다르다.

가격은 미국 달러 기준이다. 한국으로 보내 주는지, 배송비가 얼마인지는 Fulton's 스토어의 주문 화면에서 확인해야 한다.

일본에서만 파는 서명판

작가는 자기가 가진 후지산 상자에 직접 서명을 넣어 따로 판다. 바깥 상자와 상자 안의 사진가 소개 카드, 두 군데에 서명했다. 이름은 「서명 후지산 상자」이고, 일본 국내용 온라인 스토어에서 재고가 남을 때까지만 판다.

턴테이블 위에 비닐 포장된 트럼프 상자가 놓여 있다. 왼쪽 후지산 상자의 산 사진 위에 검은 펜으로 서명이 들어가 있다
턴테이블 위에 놓인 서명판. 후지산 사진 위에 서명이 보인다.

집에 하나, 학교에 하나

작가의 소개 글 끝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집에 하나. 학교나 시설, 사무실에 하나. 아니면 공공장소마다 하나씩 두는 건 어떨까요?

그의 사진은 의뢰를 받아 잡지와 신문에 실려 왔다. 요즘은 광고와 영화제 포스터, 레코드 표지처럼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자리에도 놓인다. 작가는 그 점이 기쁘다고 했다. 트럼프는 그 목록에 새로 붙은 자리다. 일본의 일상에서 찾은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사진집이었다면 책장에 꽂혔을 사진들이 식탁과 방바닥에 펼쳐졌다.

나무 식탁에 카드를 늘어놓고 어린아이와 어른이 카드놀이를 한다
식탁 위의 카드놀이. Photo: @daichinagaiphotography
이불 위에 카드를 줄지어 펼쳐 놓았고, 손에 든 카드 한 장에 고양이가 코를 댄다
고양이가 먼저 냄새를 맡는다. Photo: @henachoco_dragon
다다미 위에 후지산 상자와 카드 여러 장이 흩어져 있다
다다미 위에 펼쳐 놓은 카드. Photo: @takaomikim

정리

이 글은 작가가 보내 온 소개 글과 홍보 자료, 9월 16일에 올린 영문 블로그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카드 매수와 종이 사양은 자료에 없어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