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에 태어난 사진가 이경모의 탄생 100주년 기획전 《같은 무게의 날들》이 서울 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 3~5층에서 열리고 있다. 10월 8일에 문을 열어 11월 22일까지 이어진다. 나주 동신대학교 이경모카메라박물관이 소장한 사진과 카메라를 서울로 옮겨 왔다. KT&G 보도자료에 따르면 사진 100여 점과 카메라 100여 대, 육필 노트와 필름 같은 유품이 나왔다.

이경모 하면 대개 여수·순천 10·19 사건과 한국전쟁 사진이 먼저 떠오른다. 이번 전시는 그 옆에 운동회와 가족, 동네 풍경을 나란히 건다. 제목도 거기서 나왔다. 주최 측은 역사의 순간을 찍은 날도, 가족과 보낸 날도 한 사람의 삶 안에서 같은 무게로 이어진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붓 대신 든 카메라

이경모는 1926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났다. 동신대학교 보도자료에 따르면 1939년 광주고보에 들어갈 때 할아버지에게 미놀타 베스트를 선물받으면서 사진을 시작했다. 원래 꿈은 화가였다. KT&G 상상마당은 그가 집안의 반대로 미술학교에 가지 못하자 붓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고 소개한다.

1946년, 스무 살에 호남신문 사진부장이 됐다. 지금의 광주일보다. 전시는 이 시기의 그를 「청년 예술가 이경모」로 따로 짚는다. 기록 사진가로 알려지기 전, 그림을 꿈꾸던 청년이 무엇을 찍었는지 볼 수 있다.

1948년 여수와 순천, 1950년의 전선

1948년 그는 호남신문 사진기자로 여수·순천 10·19 사건의 현장에 있었다. 동신대에 따르면 이때 들고 간 카메라가 코닥 스페셜 반탐이다. 한국전쟁 때는 종군하며 전선을 기록했고, 그때는 라이카 IIIb를 썼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전쟁 때 쓴 취재 수첩과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일기도 나왔다.

흑백 사진. 철모를 쓰고 넥타이에 두꺼운 외투를 입은 청년이 팔에 완장을 두르고 가슴에 작은 카메라를 매단 채 섰다. 뒤로 공장 굴뚝과 기와지붕이 보인다.
여순 10·19 사건을 취재하는 이경모, 1948. 철모와 완장 차림이고, 외투 가슴께에 작은 카메라가 매달려 있다.사진 제공 동신대 이경모카메라박물관, 출처 한겨레(2023)
흑백 사진. 흙먼지 속에 미 공군 구조 헬리콥터가 내려앉고, 그 앞으로 미군 지프가 달린다. 오른쪽에 KAESONG 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고 군인들이 먼지를 피해 얼굴을 가린다.
한국전쟁, 경기도 파주, 1951. 구조 헬기가 일으킨 흙먼지 속에 「KAESONG」 이정표가 서 있다.© 이경모 · 사진 제공 동신대 이경모카메라박물관, 출처 월간 사진예술

운동회와 일주문, 그리고 판문점

전시의 다른 절반은 일상이다. 동신대는 그동안 격동의 현대사를 중심으로 조명돼 온 그의 작업을 1960년대 산업화 시대 시민과 상류층의 삶까지 넓혀 다시 보여 준다고 밝혔다. 맨 위의 솜사탕 사진은 1955년 서울의 한 학교 운동회에서 찍었다. 휴전하고 두 해 뒤다.

전시장 모습. 왼쪽 벽에 액자에 든 흑백 단체 사진과 손글씨처럼 쓴 짧은 글이 붙어 있고, 안쪽 벽에는 작은 컬러 사진 네 점과 짧은 글이 걸려 있다. 바닥은 회색 콘크리트다.
KT&G 상상마당 홍대 전시장. 왼쪽 벽에는 단체 사진과 함께, 광양으로 가던 길에 아버지를 만났는데 아버지가 자신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7월 30일 자 일기 한 대목이 적혀 있다. 안쪽 벽에는 작은 컬러 사진들이 걸렸다.사진 KT&G 상상마당 인스타그램
흑백 사진. 풀이 무성한 언덕 위에 기와지붕을 얹은 일주문 하나가 서 있고, 그 아래에 사람 둘이 작게 보인다. 하늘에는 구름이 넓게 깔렸다.
봉은사 일주문, 서울, 1954. 문 아래에 선 두 사람이 문의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이경모 · 사진 제공 동신대 이경모카메라박물관, 출처 동신대학교
컬러 사진. 회담장 건물 사이의 길을 정장과 원피스 차림의 방문객들이 걸어가고, 뒤로 버스 한 대가 서 있다. 길가와 건물 옆에 군인들이 서 있다.
판문점, 경기도 파주, 1961. 버스에서 내린 방문객들이 회담장 건물 사이를 걷는다. 이 무렵의 사진에는 컬러도 있다.© 이경모 · 사진 제공 동신대 이경모카메라박물관, 출처 월간 사진예술

같은 사람이 찍은 전쟁과 운동회를 한 전시장에서 나란히 보면, 어느 쪽이 더 무겁게 느껴질까? 전시 제목은 그 물음에 미리 답을 내놓았다. 둘 다 같은 무게라고.

카메라 1,400여 대를 기증한 사진가

이경모는 평생 모은 카메라 1,400여 대와 사진 작품을 동신대에 기증했다. 동신대는 이것으로 1996년 카메라 박물관을 열었고, KT&G 상상마당은 이를 국내 최초의 카메라 박물관이라고 소개한다. 그 카메라 컬렉션이 서울에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신대 보도자료가 꼽은 출품 카메라는 이렇다. 189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아날로그 카메라, 해방 직후 그가 직접 쓴 미놀타 베스트, 여순 사건 때의 코닥 스페셜 반탐, 한국전쟁 종군 때의 라이카 IIIb, 초창기 폴라로이드, 초소형 스파이 카메라, 기자들이 쓰던 프레스 카메라, 옛 공산권 나라의 카메라까지 나왔다.

유리 진열장 안에 금빛 몸체의 카메라 세 대와 붉은 가죽을 씌운 금빛 카메라, 그 앞에 은색 레인지파인더 카메라가 놓여 있다. 뒤쪽에 노란색과 빨간색 필름 상자들이 보인다.
전시장의 카메라 진열장. 금빛 몸체의 카메라들 앞에 은색 레인지파인더 카메라가 놓였고, 뒤로 필름 상자들이 보인다.사진 KT&G 상상마당 인스타그램
유리 진열장 안에 둥근 반사판 플래시를 단 프레스 카메라와 주름 상자 카메라, 작은 소형 카메라들이 놓여 있다. 뒤 벽에 100 Years of Camera History 라고 적힌 포스터가 걸려 있다.
플래시를 단 프레스 카메라와 소형 카메라들. 뒤 벽에 「100 Years of Camera History」 포스터가 걸려 있다.사진 KT&G 상상마당 인스타그램

한 롤에 여덟 장

필름으로 찍는 독자라면 코닥 스페셜 반탐 앞에서 잠시 멈춰 볼 만하다. 1936년에 나온 이 카메라는 산업 디자이너 월터 도윈 티그가 디자인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소장하고 있다. 필름은 코닥의 828을 썼다. 35mm 폭에 양쪽 구멍 대신 컷마다 구멍 하나를 낸 필름으로, 28×40mm 크기로 한 롤에 여덟 장을 찍는다(마이크 에크먼).

1948년 여수와 순천의 장면도 한 롤에 여덟 장이 들어가는 카메라로 찍혔다는 뜻이다. 서른여섯 장짜리 롤에 익숙한 지금, 여덟 장만 있다면 무엇을 남길까?

정보

전시 포스터. 흰 바탕 위쪽에 붉은 글씨로 같은 무게의 날들 이라는 제목이 있고, 가운데 흑백 사진 속 나무 전망대 위에 아이들과 어른들이 올라서 있다. 오른쪽에 2026 10.8 Thu 와 11.22 Sun 이 적혀 있다.
《같은 무게의 날들》 포스터.출처 동신대학교
  • 전시 이경모 탄생 100주년 기획전 《같은 무게의 날들》(The Weight of Ordinary Days)
  • 기간 2026년 10월 8일(목) ~ 11월 22일(일), 월요일 휴관
  • 장소 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 3~5층, 서울 마포구 어울마당로 65
  • 시간 11:00 ~ 19:00(입장 마감 18:30)
  • 관람료 무료
  • 주최·주관 KT&G 상상마당, 동신대학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작품집 『이경모, 두 개의 시선』
  • 순회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27년 3월 2일 ~ 4월 23일, 이어서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 안내 KT&G 상상마당 전시 페이지 ↗

관람 시간과 휴관일은 KT&G 상상마당 전시 안내(2026년 11월 5일 확인)를 따랐다. 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길 권한다.